요즘처럼 어려운 시절도 없다는 말이 세간에 유행어가 되었지만 돌아보면 언제는 살만했던가.
전쟁 이후 배고파 죽겠다고 했다가 지천에 먹을 게 넘쳐 배불러 죽겠다고 하는가하면 어떤 이는 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하고 어떤 이는 떼돈 벌어 좋아죽겠다고 한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황금만능주의는 돈이 인류의 편리를 위해 생기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이 중요한 수단이 되어 왔지만 언제 부턴가 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이 무색해지기 시작했다.

죄를 지어도 번호사비나 벌금으로 때울 수 있다 보니 유전무죄무전유죄란 말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돈없어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 수술을 받지 못해 운명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수입구조가 열악한 노년일수록 자본주의 사회는 동물의 왕국과 다를 바 없는 게 현실이다. 가난한 청소년들이 원조교제에 나서는 일과 구매자가 있으니 제공자도 있듯이 성의 타락도 돈이 원인이다.

뿐만 아니라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살인이나 살인교사도 걸리지 않았을 뿐이지 심심찮게 올라오는 뉴스거리가 되었으며 잠자고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것조차 돈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

오죽하면 버티다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생존과정이 인기를 끈 프로그램으로 손꼽힐까.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다. 불과 수 십 년 동안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린 사회적 환경과 도덕적 잣대가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와 버렸다.

자동차와 아파트와 물질적 풍요로움이 더해 가는데 왜 행복지수는 갈수록 추락할까.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2020년 발표한 국가별 행복지수 순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5.872점을 받아 전체 153개국 중 61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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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당 GDP, 사회적 지원, 기대 수명, 사회적 자유, 관용, 부정부패 등 6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국가별 행복지수를 산출해 순위를 매겼다. 1위부터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가 주를 이뤘다.

아시아에서는 대만이 25위로 가장 순위가 높았고, 31위 싱가포르, 52위 필리핀이 뒤를 이었다. 살펴보면 복지와 경제가 국민의 행복지수와 상관관계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복지가 잘 돼 있는 국가의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인데 한국의 복지는 허점이 상당하다.

필자가 지난 22일 대구시를 방문, 비가 쏟아지는 아침 무렵 적어도 200미터는 족히 넘을 듯한 길이의 무료급식 대열을 보고 느낀 점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우산을 들고 말없기 기다리는 노인들의 행렬은 대한민국 경제의 현실을 보여주는 현주소였다.

최근 정부가 재난기금이라며 푼돈이라도 나눠주지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받아본 사람만이 안다. 이제는 도덕이나 예절보다 먼저 먹는 게 임자인 시대에 도래했다. 니 것 내 것 안 가리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은 각박함으로 채워지고 있다.

오래전 골목마다 모여 빗자루로 청소를 하던 모습에서 아파트 문 밖에도 안 치우는 세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세금 거둬서 온갖 방법으로 챙겨 쓰는 것이야 말로 가장 합법적이고 풍요로운 수단이 되고 보니 너도 나도 권력 앞에 줄서기를 하는 것이고 과거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시절과 다를 바 무엇일까.

깜도 안 되는 인사들이 공천 받아 시류를 타고 관직에 오르니 피폐한 서민들의 살림은 점점 한계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이 무급이거나 특권이 박탈된다면 누가 출마할까. 모두 권력의 자리에 앉으면 이래저래 권한이나 우월적 위치에서 생기는 게 많으니 정치적 철학이나 소신보다는 당리당략의 거수기 역할에 일조하는 것이다.

예산 따서 지역발전 시켰다고 마치 자신의 돈인 마냥 생색을 낼 수 있는 자리다 보니 누군가는 예산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 죽은 조상에게 현재 살아가는 자식들이 잘되게 보살펴 달라는 일종의 뇌물이나 마찬가지다.

의식이 끝나면 귀신이 먹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모여 앉아 이른바 음복이라 하여 술까지 마신다. 만약 제사지낼 경우 귀신이 달라붙어 현재 산자들에게 해가 된다면 누가 지낼까. 결국은 추모보다 이익을 전제한 자위이벤트다.

또 하나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대학을 향하는 부모들의 성화에 자식들은 죽어라 학원에 과외까지 해가며 공부하지만 정작 서울대나 연고 대 가더라도 취업이 되지 않거나 살아가는데 도움 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어려운 공부를 할까.

결국 두 가지 모두가 자신의 이익과 맞물려 있으며 종래에는 돈으로 귀결된다. 정치권에 대한 출마나 학업에 대한 노력이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지 못하고 출세나 이득이 목적이 된다면 너무 슬픈 현실이 아닐까.

중요한건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푼돈으로 버틸게 아니라 지혜롭게 해쳐나갈 현명함이 필요한 시기다. 삶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적 교육에 기반을 두었다면 지금처럼 자신의 민생고에 몰두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다소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어려웠을 때도 슬기롭게 난국을 헤쳐 나갔을 선조들의 지혜는 어디로 갔을까. 지식만 추구하다 실종된 지혜는 케케묵은 구시대적 유물이 되어간다.

경인매일 회장 덕암 김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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