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문득 우리사회가 장애로 사는 삶이 얼마나 눈물 나고 힘겨운지 아직도 모르는 사회 안에서 중증장애인부부의 삶을 보면서 가정이 참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32세에 하반신마비장애를 가지고서 결혼 한지 1년쯤 내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도 함께 하지 못한 나이기에 더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선남선녀로 만나 장애로 이혼의 아픔 보다 핏덩이를 길러야 했던 어려움을 조금은 알기에 두 사람 다 태어나면서부터 중증장애로 축복보다는 염려로 반대를 무릎 쓰고 결혼한 용감한 뇌성마비부부가 있다.

 

이 부부는 결혼식은 교회의 도움으로 신혼여행은 꿈도 꿀 수 없이 임대아파트에서 시작했다. 뇌성마비여성에게 임신은 축복보다 가족들의 반대와 주위에서 조차 혹여 장애 아이를 낳을까 세상모두의 반대 속에서도 첫딸 순산으로 이겨냈다. 장애로 뛰기는커녕 걷는 것도 꼬여진 팔과 다리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얼마나 애타는 일인지 그 용기 하나만으로도 이 부부는 승리자다. 내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위험스레 걷다 넘어져도 움직일 수 없어 애타했던 나의 기억으로 조금은 더 이해한다. 부모가 되어 아이가 생기면 어느 부모들처럼 해주고 싶은 것도 장애인가정이라 해서 없거나 포기하면 좋을 것인데 왜 이리 더 해주고 싶은지 싶다.

 

결혼 전 뇌성마비로 열심히 살아보려고 돋보이게 노력하는 모습으로 다가온 남편은 함께 극복해보자며 본회의 가족이 되었었다. 도움을 받기보다 어려운 장애인들을 돕는 일에 우선첫딸의 순산을 위해 도움요청으로 주위 분들 역시 자기 일처럼 이것저것 도운 모두의 승리였다. 애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지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찾은 집에 풍경은 이가 없으면 잇몸이 한다고 무릎 게걸음으로 불안하지만 아이를 안고 챙기는 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드라마였다.

 

또다시 들려온 둘째 임신 역시 반가움 보다 솔직히 염려와 걱정이 앞선 모두를 넉 다운 시킨 건강한 아들로 딸아이 하나인 나를 장사씨름의 한판으로 보기 좋게 넘겼다. 이때부터 제비가 새끼를 위해 먹이를 부지런히 나르듯 최선을 다하는 부부의 모습에 부러움은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자신들의 몸 관리에도 버거울 텐데 임신소식은 장모님의 걱정이 분노로 변하여 귀한 생명을 우리네 흔한 욕심으로 떠나보냈다는 소식에 2년 동안 집안 장모님을 피해 항의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부부의 애 뜻한 사랑은 변하지 않아 결국 장모님은 자택으로 돌아간 후 열심히 살아냈습니다. 둘째와 셋째나이차가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셋째 임신 소식은 조용히 지나가더니 출산을 하고서야 남자아이라고 알려와 주위를 또 놀라게 했습니다.

 

살림에 아이들이 셋이니 의류와 장난감 같은 비용은 보조금으로는 어려움이 많은데도 두 부부외출이라곤 일요일 교회에 가는데 항상 웃는 모습에 주위 분들에게 무한정한 엔돌핀으로 각 가정에서 아이들 옷과 생필품의 값을 대신했습니다. 생활을 대표해 해야 하는 가장으로 살려면 자동차는 필수임을 알기에 주위 분들이 자신이 타던 차를 물려주는 식이었습니다. 그것마저 사고를 당해 워낙 오래된 연식이라 보상이 거의 없어 보험회사에서 딱한 사정을 알고 중고차를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호사담화라고 할 수 있는 말에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넷째 임신소식엔 그동안 반대만 하던 분들이 체념 보다 많은 축복을 빌었습니다. 뒤늦게 서울에서 일면식도 친인척 하나 없는 전북 정읍시 신태인에 이사를 한 후 알려와 모두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했던가요. 이사한 이유를 물어도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서라는 말뿐인 석연치 않아 알아본 결과 중학교 들어가서 딸의 학급 애들이 두부모가 장애인이라는 놀림과 왕따로 심한 우울증으로 큰일이 날 것 같아 이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너무 기가 막혀 학교장에게 찾아가 따지려는 것을 알고 저에게 사정사정을 해서 그만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장애로 30년을 전국을 돌며 보아온 수많은 사람 중에 중증의 뇌성마비장애인 부부의 결혼도 보질 못했는데 더구나 네 아이를 낳은 부부는 세계에서 아직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전국의 어려운 분들이 많아 도와달라는 분들로 돌아다니다 보니 어떻게 사는지 간절함 마음 뿐 다른 분들의 일로 못가다 이번 교통사고로 발인 차가 폐차하면 이 가정은 발등에 불이라 내려가 보았습니다. 말도 어눌하고 장애인이다 보니 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과실 여부도 상대가 신호를 위반해 좌회전 하다난 사고에서 73이라니 보험회사에 찾아가 100이지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듣고 부당함을 알리고 정읍으로 향했습니다.

 

우리 대부분 가정은 아이들 교육문제로 도시로 가는데 이곳은 도심지와 떨어진 외딴 곳에 LH주공아파트라 아이들 학교와 살림을 위해서 일반인도 차 없이는 생활이 힘든 곳이었습니다. 집안에 들어가 보니 멀리서 왔다고 차라도 끓여야겠다고 하니 뇌성마비장애인들의 특성으로 나이 들면 경추변형으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전신마비가 되는 것을 익히 잘 아는 저로서 사양하는데 남편이 대신 끓여준 믹스커피도 달지 않았습니다. 목에는 파스를 덕지덕지 겹쳐 붙인 몸으로 3살 된 아이돌보기조차 힘겨움을 파스로 아는데 큰 딸아이가 다행히 코로나로 일찍 들어와 있었으나 딸도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나이니 눈치로 살아온 사람답게 남편이 대신해준 커피를 대하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은 이 부부를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런 부모의 돌봄 탓인지 아이들도 가진 것 없고 누리지 못한 아이들답지 않게 차분히 부모님의 말에 귀기우리면 뭔가 하려는 모습에 또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당장 발인 차가 없어 중증인 나 같으면 사방에 전화라도 하며 부탁도 할 수 있겠으나 전화상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상대를 잘 아는지라 못했을 것을 알기에 마음만 먹먹했습니다. 차량보상비로 나오는 돈으로는 생각도 못하는데 당장 생활과 아이들을 위해서 있어야 할 차가 없으면 국가부담은 더 커질 뿐인데 아직 우리인식들의 한계가 아쉽고 아플 뿐입니다.

사회복지를 한답시고 너무나 많은 불합리와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죽어서도 버져지다시피 하는 장례를 보고 있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데 그나마 우리가 가정을 지켜갈 수 있게 도와야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닌지요. 미래사회에 출산감소를 걱정하면서 지자체들의 한 아이 출산장려금까지 주어도 낳지 않는데 중장애로 4명의 건강한 우리미래를 책임질 이 부부에게만 우리가 맡겨야 옳은 것인지 자괴감만 커집니다. 건강하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은 스스로 걷고 뛰고 자신이 가고 싶고 해보고 싶은 일을 한 분들도 도와야 하는데 평생을 마음대로 해보지 못하고 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 부부를 난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병들거나 죽음을 앞둔 분들도 우리는 반드시 도와야 합니다. 요즘 차는 우리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없어도 살아갈 수 있으나 이 가정에는 차가 생존이고 생활입니다. 이런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면 이제라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것도 아닌 차지원은 아이들 양육과 중증장애인부부의 복지를 해결하려면 국가는 훨씬 많은 비용을 쏟아 부어도 어려운 바보 같은 결정을 하게 해서는 우리가정들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30년 동안 해온 일에 인식변화를 위해서 장애로 가정을 만들고 꾸려가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비장애인부부들도 갖가지 이유로 장애아를 낳거나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인 이유입니다.

 

중장애인 부부도 조금만 도와주면 우리 애들 장애를 갖고 태어나거나 장애를 가질 때 건강하게 자란 이 부부의 4명의 아이들이 돕는 사람이 됩니다. 이부부의 큰 따님의 장래 소망이 사회복지사랍니다. 우리의 부족한 관심과 지원 속에서도 이 딸아이는 이미 벌써 중장애인 부모님을 통해 교육으로 알 수 없는 복지의 근간을 깨우친 인재인 것입니다.

어려울 때 우리사회가 어떻게 도움 받아 부모님과 자신과 동생들과 가정이 깨지지 않고 살아온 것인지를 삶의 속내를 알기 때문입니다.

 

해처럼달처럼사회복지회 sunlikemo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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